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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 하루도 무사히...

20년차 간호사의 감사노트

by Lily0123 2023. 12. 5. 12:40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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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성당... 감사기도...

글쓴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 집에는 어린 소녀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'오늘도 무사히' 글씨가 적힌 그림이 있었다.  까만 바탕위에 단발머리 하얀 소녀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. 

병원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하루 하루 입원환자의 섭취량과 배설량을 기록하는 Intake / Output 체크, 일명 I/O Check 가 있다. 이는 그 날 하루 동안 식사 잘하고 대 소변 잘 보는게 정말 중요하기에 거의 루틴으로 저녁때 시행되는 업무이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듀티별로 하루 3회 체크하는 경우도 있다. 일반인들에겐 하루 이틀 잘 안 챙겨 먹고 변비가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고령의 허약한 입원 환자들의 경우 변비가 지속되면 부작용으로 미식거림, 소화불량 등이 유발되어 식욕부진, 탈수로 이어질 수 있다. 이는 또 다시 기립성 저혈압으로 낙상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캐스케이드(Cascade)를 보여주기 때문에 매일마다 대변을 봤냐? 안봤냐? 부터 기본적인 활력증후인 바이탈 사인(V/S, Vital sign)을 체크하며 환자의 상태 변화를 면밀히 살펴본다. 그리고 우리 환자들이 별 탈 없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기기를 기원한다. 

 

20년 가까이 간호사로 지내면서 긴박한 생과 사의 응급상황도 간혹 겪게 되는데  이 중 아직도 문득 문득 기억나는 일이 있다. 2006년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순환기내과 병동 근무 시절 이제 입사한지 갓 두 달 정도 된 신규 간호사와 함께 나이트 듀티 근무를 하고 있었다. 순환기내과 병동 특성 상 간호사 스테이션에는 부정맥 있는 환자의 심전도 리듬을 알려주는 Telemetry  모니터링 화면 소리가 "띠~~, 띠~" 백색 소음처럼 들리고 있었고, 새벽이 넘어서까지 주치의 선생님의 당일 처방 픽업은 이어졌다... 

공기는 조용하고 적막하지만 새벽 해가 떠오르기 전 처방 확인을 마쳐야 하기에 마음은 분주한 근무를 하고 있었다. 

 

새벽 5시가 조금 안된 시각, 신규 간호사가 아침 V/S 체크를 하러 간호사실에서 6인실 첫 번째 병실로 출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, "선생님!  환자가 숨을 안쉬어요!" 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은...떨리는 신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. 

"아, CPR 이구나!" 그 뒤엔 1시간 넘게 이어진 제세동(defibrillator)과 응급처치로 처치실은 "초 토 화" 가 되었다.  글쓴이가 근무한 병동에는 흉부외과 의국이 가까이 있어서 CPR 방송이 나오면 야간이라도 바로 응급처치가 신속히 이루어졌다. 

안타깝게 그 때 그 환자분은 이미 Sudden death 상태로 목격되어 그 죽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.  그 환자분은 바로 그 전날 입원한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의 환자분이셨다. 

 

흉통으로 응급실에 내원했고 이어 시행한 심혈관조영술(coronary angiography , CAG) 결과 상 막힌 관상동맥의 협착부위를 넓혀 주는 경피적관동맥중재술(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, PCI)을 받아야 했다. 하지만 환자분과 그의 가족들은  비용부담으로 딱 하 루 만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 하여 담당 교수님의 설득은 그 날 저녁 9시까지 이어졌고...결국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는 가족분들의 의견에 따라 안타깝게.. 하루가 가고 있었다..  그리고 그 날 새벽 환자분은 되돌릴 수 없는 삶의 마지막, 죽음으로 병원을 떠나게 되었다... 

 

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모두 슬픔과 절망감, 아쉬움, 후회...그 어떤 단어로도 다 표현 할 수 없겠지만 그 환자분의 삶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면 그와 그 가족들 모두 오늘 밤 무사히... 소녀의 기도가 그 누구보다 더 절실히 간절했을 것이다. 

 

오늘 하루 입원 환자분들의 오늘도 무사히를  바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내일이 되기를 또 기도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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